가.정월
① 설
설 차례는 군내 모든 가문에서 다 행하고 있다. 전에는 하루 전에 묵은 세배라 하여 집안이나 연장자를 찾아 다니면서 지난해의 인사를 했으나 지금은 이 묵은 세배는 하는 곳이 없다.
차례는 동고조 당내가 합동으로 조상 있는 집을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지내는 가문도 있고 한집 단위로 제집 조상의 차례를 그조상의 직손들만이 모여 지내는 가문도 있어 일정치 아니하다. 설의 절식은 떡국이고 차례도 떡국으로 지낸다. 차례가 끝나고 나면 세배풍속 세배를 한다. 세배풍속도 한 마을이 모여 합동으로 세배를 하는 마을도 있고 개별적으로 친척이나 동리의 노인을 찾아다니면서 하기도 한다.
설의 놀이로서의 윷, 연날리기, 널뛰기 등이 있으나 이 중 윷과 연날리기는 지금도 행하여지고 있고 널뛰기는 전과 같이 성행치 않고 있다. 정월 자일을 쥐의 날이라 하여 쥐주둥이를 볶는다는 뜻에서 콩을 볶아 먹었으나 고노들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은 일진(日辰)도 거의 잊고 있어 이런 행사는 다 없어졌다고 한다. 4,50년 전에는 설에는 보름까지를 정초라고 하여 명절기간으로 쳐서 농가에서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았으나 근년에는 설 3일 정도로 고작하여 명절기분을 내고 있다.
② 대보름
월력을 중심으로 생활하던 시대 즉 음력시대에 있어서 정월 보름인 상원은 한해의 시발로 여겨왔으므로 농촌에서는 이날부터 농사가 시작된다고 하여 정월 보름달 새벽에 퇴비를 한짐져서 자기 논에 가져다 놓은 습속이 있을 정도로 이 날은 농경속에서는 중요한 날로 되어 있고 2월에서 12월까지 15일은 보름이라고 하지만 정월은 대보름이라 하여 다른 달의 보름과 구별하고 있다. 따라서 이날은 연중 어떠한 절일보다 특이한 민속이 많은 날로 고성지방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대보름의 절식은 약밥이다. 감, 대추, 밤 등의 재료가 많이 들어가므로, 오곡밥으로 대식하기도 하나 아직도 약밥을 하는 집이 있고 대보름 차례를 행하는 집도 혹 있다고 교동리의 함병준씨는 말하고 있다.
대보름에는 소복과 금기의 속이 가장 많다. 보름달은 맑게 지나면 1년중 무재하다 하여 14일에 대청소를 하고 이날 밤에 방마다 불을 밝힌다. 이 날 밤을 자면 눈썹이 희여진다고 하여 잠자지 아니하는 풍속이 있고, 달부름이라 하여 일년의 한습(旱濕)을 점쳐 보는 행사도 한다. 수수대공에 콩을 12개 넣어 14일 저녁에 물에 잠궜다가 15일에 건져서 그 불은 도에 따라 그 달의 한습(旱濕)을 점친다. 즉 두번째의 것이 많이 불었으면 2월은 비가 많이 오고 네번째가 불지 않았으면 4월은 가문다고 한다.
보름날 아침에 귀밝이 술을 먹는다. 이 술을 먹으면 연중 귀가 밝다고 한다.
부스럼 씹기도 한다. 14일 저녁에 호도, 백자, 밤 등소리나는 과일을 준비 하였다가 15일 눈 뜨자 '부스럼 씹는다'라하고 소리나게 깨물면 연중 부스럼이 나지 아니한다는 속신이 있다. 이때 다른 말을 하지 않고 하여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더위팔기도 보름의 풍속으로 상대의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라'라고 한다. 이것을 많이 팔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아니한다고 한다. 이 고장에서 하였던 액막이는 여러 종이 있다. 백지에 성명과 생년월일을 써서 백반 세 접시를 담아 강물에 띄우는 어촌식도 하고 작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만월을 향하여 세워두고 축원하는 액막이도 행하여지고 있으며 어촌에서는 해안에서 이 행사를 한다.
망월(望月)은 지금도 하고 있고 동리마다 망월하는 산이 따로 있다. 고성군은 해안선이 있기 때문에 수평선이 보이는 산에서 망월을 한다. 횃불을 들고 망월을 하되 군중 속에서 가장 먼저 망월을 한 사람은 그해 길한 일이 있고 총각은 장가를 가게 된다는 속신이 있어 먼저 보려고 한다. 달이 뜨는 위치 달의 빛에 의하여 현재 농사의 흉풍을 점친다.
귀신달굼도 보름 속습의 하나이다. 16일은 귀신날이라 하여 일몰 즉시 대문 앞에 귀신이 꺼리는 냄새나는 물품을 태운다. 천조각, 머리카락 등을 태워 귀신이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신은 다 엎어 놓는다. 신을 엎어놓지 아니하면 신어 보고 맞으면 신고 가고 귀신에게 신을 빼앗긴 사람은 신재(身災)가 있다고 한다.
③ 입춘(立春)
입춘은 빠르면 12월에 있고 늦으면 정월에 있다. 입춘에는 입춘대길이란 글을 씨서 기둥에다 붙였으나 지금은 입춘 붙이는 집은 거의 없고 다만 천정에 '太歲甲子萬事亨通(태세감자만사형통)'이라는 것은 아직도 더러 써서 붙인다고 한다.
④ 걸립(乞粒)
정월에 걸립을 하는 부락이 있다. 교동리 함병준씨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이 걸립패를 남사당패라고도 이르나 기예(技藝)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아니고 동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대에 성황신을 모신 성황대를 앞세우고 풍물을 울리며 집집마다 찾아가서 축원을 한다. 이 축원은 좌당이 하는 것은 아니고 걸립패 중에서 말 잘하는 사람이 맡아한다. 풍물을 울리고 지신을 밟는다고 마당을 몇바퀴 돈 뒤에 성황대를 세워 놓으면 가세에 따라 백미를 소반에 받쳐 주인이 성황대 앞에 갖다 놓으면 주재자가 입심 좋게 축원을 하고 주인은 절을 한다. 끝나고 나면 음식대접을 받고 백미는 걸립패가 가지고 간다. 이렇게 하여 모은 백미는 단체의 일년비용으로 쓰고 남은 것은 풍물을 사는데 쓰고 있다.
① 풍신(風神)
농어촌의 생활이 바람과 깊은 관계가 있어 바람의 신을 섬기는 속신이 풍신행사(風神行事)다. 2월1일에 풍신이 내려왔다가 15일 풍신이 올라간다고 한다. 2월1일에 오곡밥을 지어놓고정화수 한동이를 떠다 풍신에게 제를 올리는데 이 지방에서는 주부가 이것을 담당한다. 이 보름 동안은 풍신이 내려와서 있다고 해서 집안의 모든 일을 삼간다. 어촌은 농촌보다 풍신제가 더 성행하였으나 지금은 찾기 어렵게 되었다.
② 좀생날
2월6일은 좀생이 보는 날이다. 좀생은 성군(星群)이라 이때가 음력으로 6월 즉 상순이므로 이즈러진 달이 초저녁에 사천(四天)에 나타난다. 이때 좀생이라는 성군(星群)과 달과의 거리로 흉풍을 점치는 것인데 거리가 가까우면 그해는 흉년이 들고 거리가 멀면 풍년이 든다.
③ 한식(寒貪)
청명 다음날 즉 동지에서부터 105일 되는 날이 한식으로 혹 2월에 들기도 하고 혹 3월에 들기도 하는 절일의 하나로 속설(俗說)에 '이월 한식에는 꽃을 보나 삼월 한식에는 꽃을 못 본다'고 하여 계절과 관계를 맺고 있다. 지금은 한식 차례를 지내는 가문이 적어졌다하나 이 시기에 선조의 묘의 사초(莎草)를 손질하는 습속은 여전하다.
다.3월
3월3일 삼진이라고도 하고 중삼일이라고도 하며 이 시기가 답청 때이므로 진달래 꽃을 따서 쌀가루에 넣어 전을 붙여 먹는데 이것을 화전이라 한다. 진달래꽃을 국수와 술에 넣어 사당제에 썼으나 지금은 이 풍속이 없다.
4월8일 석탄일(釋誕日)로 일반 민가에서 평일과 다름이 없으나 고성은 건봉사라는 대각이 있어 건봉사와 인연이 있는 민가가 많다. 과거 농민중에는 건봉사의 토지를 경작하였던 사람이 많고 건봉사에 중학과정의 봉명중학교가 있어 이것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도 있다. 4월8일이면 불교신도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비신도라 할지라도 건봉사에 많이 찾아가 하루를 지냈다. 이날 건봉사에서는 예불외에도 제등행렬이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수백간의 건물이 전화로 회진되어 폐허로 되어 있으나 건봉사 전성기에는 4월8일은 이고장에서는 절일이나 다름 없었다.
5월5일은 단양 혹은 단오라 이르는 절일로 차례를 행하였으나 지금 이 지방에서 단오차례를 행하고 있는 집은 고노들도 잘 모른다고 한다. 절식으로는 수리취떡을 해먹는데 수리취대신 쑥떡도 한다고 한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거나 창포뿌리를 머리에 다는 풍속은 다 없어졌으나 약쑥 습속은 더러 있다고 한다. 쑥은 단오때 것이 가장 약효가 있어 이때 뜯어 놓았다가 여름철 속앓이에 다려서 먹는다.
단오의 민속으로 남자는 씨름을 하고 여자는 그네를 뛰였다. 남자의 단오 씨름은 자취를 감추었으나 여자의 그네는 농촌이나 산간부락에서는 아직 하고 있는데가 있다. 문화제 행사종목으로 채택하여 매년 1회식 씨름과 그네 솜씨를 겨루게 된다.
유두행사는 지금의 고로들도 기억에 없다고 하며 복에 복대림이라 하여 추념으로 개를 잡아먹는다.
호미씻이를 농촌에서 한다. 7월이면 김매기가 끝나고 농한기가 됨으로 농촌 자연단위부락의 농부들이 하루를 쉬면서 주식을 든다. 이때 술과 음식은 각 농가에 배당하여 모으고 산간에서는 하천가에서 하고 해안 농촌에서는 바닷가에서 하기도 한다.
7월 말에도 하고 혹은 8월 초에도 하여 그 날짜가 일정하지는 아니하나 벌초를 한다. 여름에 자란 무덤의 풀을 베는 것을 대초라고도 하고 금초라고도 한다. 묘직이 있으면 묘직이가 하고 그렇지 못하면 후손이 할 때는 성묘를 겸하여 주과포를 가지고 간다.
추석은 이곳에서도 설과 함께 가장 큰 명절로 삼고 있다. 절식으로 송편을 만들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선조묘에 성묘를 한다. 전에는 추석에 농악놀이를 한 부락도 있었으나 지금은 드물게 되었고, 이곳에서의 추석음식으로 닭을 많이 잡았다. 추석은 천신의 뜻이 있어 햇곡으로 차례 메를 짓고 과일도 덜 영글어도 햇과일을 쓴다고 한다.
5대조 이상의 시제의 달로 간혹 3월에 하는 집이 있기도 하나 고성은 9월이 많다. 방식은 앞서 통과의례 차례에서 언급이 되었다.
초가가 많았을 때는 10월에 지붕을 갈아 덮었으나 요즘은 초가가 없어 이 행사는 없어졌고 농사가 끝이 났으므로 성주단지, 삼신할머니의 쌀을 햅쌀로 바꾸어 넣는 달로 안택기도를 하는 집에서는 이달에 한다.
고성의 안택기도는 10월에도 하고 12월, 1월 등에도 하고 있다. 안택날은 일관에게 날을 받아 부정을 가리고 가장이 주재하여서 한다. 방식은 무당을 불러하는 방식과 유가식으로 하는방식이 있다 하나 무당을 불러서 하는 방식은 근년 없어졌으며 유식(儒式)에 의한 방식도 독축을 하는 방식은 거의 없어졌고 제수를 진설하고 술을 올려 주인이 절을 하는 것이 고작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