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트인 시야로 청명하고 맑은 동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곳, 천학정은 고성군 토성면에 자리한 누각으로, 조화로운 송림과 해안 사이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절경을 선사하는 동해안의 일출명소이며, 고성의 대표 누각으로 청간정과 자웅을 겨룰 만큼 근사한 멋을 자랑한다.
천학정은 동해안의 아담하고 한적한 마을 교암리에 자리한 구릉 지대 위에 있다. 그곳으로 오르는 길목,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지진해일 긴급대피장소를 알리는 푯말이었다. 교암리는 해안의 저지대 마을로써, 천학정이 자리한 구릉은 주민들을 지켜주는 신성한 곳임을 일러주는 것이었다. 천학정 구릉은 주민들이 삶을 의지해야 하는 대피소이자, 신성한 버팀목이었다.
잘 정비된 오르막길을 따라 걸으면 채 5분도 되지 않아 천학정을 마주할 수 있다. 절경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에 이 어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일까. 씁쓸한 인내는 필요 없으며, 아주 가까이에서 달콤한 열매가 기다리는 천학정.
천학정은 팔각지붕의 단층구조로 정면 2칸, 측면 2칸의 소박한 누각이다. 정자의 정면에는 천학정 현판이 걸려 있고, 누각 안쪽에는 ‘천학정기’와 ‘천학정 시판’이 게시되어 있다. 내부의 단청무늬는 누각의 작은 몸집에 비해 제법 수려하고 기품이 넘쳐 흘렀다. 겉으로는 소박하면서도 내면으로 강인함을 감춘 내공 있는 누각. 벼랑 끝에 선 천학정으로부터 삼엄한 해안을 수호하는 장군의 늠름함이 느껴졌다.
노거수 한 그루가 천학정 주변 솔숲에 서 있다. 나무의 줄기는 우람했고, 거칠고 매섭게 뻗은 가지는 천지를 내려칠 듯 매서웠다. 오랜 세월을 품은 나무를 마주한 감정은 경이로움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했다. 노거수 이외의 소나무들도 100년에 가까운 수명으로 솔숲을 이루고 서 있다. 노송의 한숨은 짙은 솔 내음을 풍겼고, 해안에서 날아온 포말과 섞여 청정한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소나무들에 비해 천학정의 연식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31년 지역 유지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노송과는 다른 옛것의 고즈넉함을 자아낸다. 이 근사한 누각은 상하천광 겨울 속에 정자가 있다 하여 천학정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위아래 호수가 비치는 하늘빛을 의미하는 상하천광. 누각 위에 올라 지평선 경계를 내어다 보자. 누각의 이름이 왜 상하천광에서 유래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를 향해 뻗은 해송 사이로 승천하는 일출 역시 손꼽히는 절경이다. 동해안에는 정동진, 경포대, 낙산사 등 일출명소가 다양하기로 유명하지만, 많은 고성군민들은 천학정을 제일의 명승지로 손꼽는다. 그만큼 해 오름의 경치가 빼어남을 의미한다. 유난히 푸르고 선명한 고성의 해안과 하늘, 그 사이 지평선을 뚫고 깨어나는 태양. 천학정의 일출은 천지가 열리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신비함을 자아낸다.
천학정의 가까운 거리에는 능파대가 자리한다. 북쪽으로 10여 분 정도 이동하면 바다에 파도에 침식된 바위의 기이한 자태가 드러난다. 잠수부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로서, 인근에 한적한 휴양지 문암해수욕장도 있어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해수욕을 즐기기에 좋다. 더불어 출출함을 달래줄 물회 집도 많다. 알고 보면 고성은 숨어있는 물회의 천국이다. 작은 크기를 주문해도 푸짐한 양의 물회와 수 가지의 반찬이 식탁에 펼쳐진다.
아름다운 천학정과 고요한 해수욕장, 맛깔나는 음식까지 손닿을 데에 있으니, 과연 이곳을 무릉도원이라 할 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