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 죽왕면에는 담수와 해수가 공존하는 호수, 석호가 자리한다. 석호란 바다였던 지역이 주변 지형의 변화에 따라 해양으로부터 분리되어 형성된 호수를 말한다. 겉보기에 호수와 다름없으나 민물과 바닷물이 엉켜있고,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공존한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함경도와 더불어 우리나라 강원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고성에서는 화진포, 삼일포와 더불어 지금 소개할 송지호가 3대 석호로 꼽힌다. 송지호에서는 한때 조개잡이도 행해졌다고 하는데, 호숫가에 통통배가 떠다니는 풍경이라니…. 믿기지 않을뿐더러 놀라울 따름이다.
고성의 구전에 따르면, 먼 옛날 송지호의 자리는 호수가 아닌 육지였음을 알 수 있다. 무려 1,50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송지호 일대의 토지는 한 구두쇠 부자 영감이 소유한 기름진 논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내려온 노승이 영감에게 시주를 청했는데, 영감은 그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노승은 화가 났다. 그는 홧김에 영감의 논바닥에 쇠로 된 절구를 던지고 사라졌는데, 그것으로부터 물이 솟아 지금의 호수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이 흥미로운 유래가 현재의 송지호를 있게 한 것이다.
노승의 절구에서 나온 물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웅대하고 광활한 송지호를 마주하니, “노승의 분개가 참으로 컸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것이 고성 지역에는 전화위복이 된 것일까. 드넓은 호수는 수생자원을 풍부하게 빚어냈고, 이로써 철새들의 낙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초가을 찾았던 송지호에서 철새의 비행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두루미 모양 구조물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그곳이 철새도래지임을 예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매년 겨울 먼 길을 날아오는 철새들에게 도래지에 닿았음을 알려주는 표식의 역할을 할 것이다.
만약에 내가 수만 마리의 철새 중 하나였다면, 나도 그들처럼 송지호를 좋아했을 것 같다. 민물고기와 바닷고기를 골라가며 맛볼 수 있고,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낙원이 어디 있겠는가. 먼 옛날 시인묵객들도 송지호의 경치를 알아주었다고 하던데, 그들 역시 이곳에서 붓을 휘갈기고 노래를 부르곤 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산명수려 일색이다.
송지호 둘레에는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어, 유유자적 걸어볼 수 있었다. 그 길의 나무들은 하늘을 가릴 만큼 빼곡히 서서 아치형 터널을 만들었고, 걷는 이로 하여금 동굴 속을 지나가는 듯한 착각마저 느끼게 했다. 대자연이 빚은 풍경은 정말이지 몽환적이고 싱그러워서 마치 만화 속 토토로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것은 현재의 이 일대 숲이 1996년 벌어진 고성산불로 인하여 많이 위축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당시의 울창함은 실로 더욱더 대단했다고 한다.
UFO가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독특한 외관의 송지호관망타워도 지나칠 수 없다. 타워의 정상에서는 360도 모든 방향으로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동쪽으로는 인디고블루 빛 동해안이, 서쪽으로는 품에 담길 듯 가까이 자리한 송지호가 내려다보인다. 송지호 건너편 왕곡마을도 시야에 들어온다. 강릉 함씨, 강릉 최씨, 용궁 김씨의 집성촌으로, 영화 <동주>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 옛 조선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수천 마리의 철새가 도래하는 만큼 조류에 관련한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었다. 가장 높이 나는 새, 가장 부리가 큰 새, 가장 오래 사는 새가 무엇인지. 이처럼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콘텐츠로 조류에 대해 학습할 수 있었고, 덕분에 즐겁고 유익하게 관람을 즐길 수 있었다. 전망대, 전시관 모두 관람할 수 있는 입장권의 가격은 단돈 천 원이다.
송지호 주변 일대에서는 송지호 오토캠핑장, 해수욕장도 만나볼 수 있다. 사실 송지호가 주목받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것은 오토캠핑장의 역할이 주효했다. 통나무집을 비롯한 야영·숙박시설이 100기가 넘을 만큼 규모가 거대한데, 다양한 편의시설까지 완비되어 내실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또, 동해안에서 보기 드문 완만한 경사의 백사장을 자랑하는 송지호 해수욕장도 찾아볼 만하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모래알갱이를 밟고, 청명한 물속을 헤엄치며 해수욕을 즐기기에 더없이 완벽한 명소이다.